장강칼럼 - 얼굴(容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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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얼굴(容貌)
  • 장강뉴스
  • 승인 2020.07.0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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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논설위원)

얼굴은 얼과 굴이 합쳐진 말이다. 얼은 영혼을 의미하고 굴은 통로라는 뜻이다. 사전적으로 눈, 코, 입이 있는 머리의 앞면 혹은 머리 앞면의 전체적 윤곽이나 생김새를 말한다.

최일중
최일중

이 얼굴은 인상의 출발지다. 인상의 요소는 외모나 표정, 제스처, 목소리, 톤, 말하는 방법 등으로 구성된다.

이중 외모나 표정 제스처가 89%에 이른다고 하니 인상이 얼마만큼 중요한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첫인상이 결정되는 데 6초가 걸린다고 한다. 그 6초 안에 그 사람의 유 무형적 이미지가 결정된다.

그러니 인상의 근거가 되고 있는 얼굴이야말로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얼굴은 표정 공장이거나 인상의 집이랄 수 있다.

그만큼 인간에게 얼굴은 어떤 특정인에 대한 기억의 모양이나 덩어리를 만드는 첫 출발지가 된다. 그 얼굴은 그 사람 혹은 됨됨이를 판단하게 만든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얼굴이 꼭 표정 공장이거나 인상의 집이 되지는 않는 듯한 형국이다. 성형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화장은 더욱 힘을 보탠다. 우스갯소리이지만 고대에는 원판 불변의 법칙이 통용됐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통용되지 않는다.

원판이 아무리 못났더라도 인위적으로 뜯어고칠 수 있는 시대이어서다. 현시대 얼굴 풍경 하나를 언급해 보자.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게 되면 아이는 성형 후의 얼굴이 아닌 성현 전의 얼굴로 태어난다.

이 점만 보완된다면 세상에는 오로지 잘생긴 얼굴만 넘쳐날 것이다. 먼 훗날 의학의 힘은 이런 단점까지 일거에 극복해 버릴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의학적 기준의 얼굴이다.

아울러 얼굴에 ‘두’ 자를 붙이면 얼굴은 두 얼굴로 금세 부정적 용어로 탈바꿈된다. 귀신처럼 세태에 발 빠르게 변화한다는 뜻이 돼 버리니 말이다.

거기에는 양심도 헌신짝처럼 버려지기 일쑤다.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좌우될 뿐이다. 아마 셀카(셀프카메라)와 직찍(직접 찍은 사진)을 그렇게들 많이 시도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얼굴을 외면해서 생기는 일들은 아닐까?

현시대에 논(論)할 수 있는 얼굴은 참으로 다채롭다. 어디까지 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박인환의 얼굴 전문을 읽어보자.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기를 꽂고 산들 무얼하나. 꽃이 내가 아니 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몸매를 감은 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엇하나. 사랑하기 이전부터 기다림을 배워 버린 습성으로 인해, 은방 내 비가 내리고 이젠 내 얼굴에도 강물이 흐른다. 가슴에 돌단을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단 간절한 것으로 보고싶다는 단 한마디. 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 언뜻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 쉽게 헤어져 버린 얼굴이 아닌 다음에야, 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늘을 돌아 떨어진 별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잊혀진다는 것의 의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얼굴은 기억의 첫 출발지이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지워낼 때 먼저 지워내는 것도 얼굴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얼굴은 이처럼 다양하게 이야기 되어진다. 문제는 사람만이 얼굴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자연도 수시로 얼굴을 바꾼다.

이는 우리들 삶과 환경이 얼마만큼 심각해졌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자연도 얼굴을 바꾸느라 정신이 없다.

우선 날씨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은은하게 내리는 비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유년시절 날씨는 비 오는 날과 맑은 날이 비교적 선명하게 구분됐다.

그러나 오늘날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같은 하늘 아래 어떤 때는 해가 나고 어떤 때는 흐리거나 비가 내리는 것은 똑같다.

문제는 스콜과 똑같은 기후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를 동남아 날씨라고들 한다. 날씨가 신경질적이 됐다는 점이다.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쏟아 붓는다. 바람 또한 너무 드세다.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 붓다가 그치고 다시 쏟아 붓고를 반복한다.

도무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사람과 자연 모두 태연하게 얼굴을 너무 쉽게 바꿔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변화가 돼야 할 것이 있고 변화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뒤죽박죽 혼재가 돼버렸다.

그렇더라도 모두들 얼굴 없다 하지 말고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을 각박한 삶속에서 한번 쯤 떠올려 보자. 거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온한 얼굴이 있지 않을까?

바다를 향해 면면히 흐르는 강물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의 얼굴이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자기 얼굴빛으로 상대에게 기분 나쁘게 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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