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친구(親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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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친구(親舊)
  • 장강뉴스
  • 승인 2020.06.2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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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논설위원)

친구란 오래두고 가깝게 사귀는 사람, 벗, 붕우, 친우를 말한다. 나이들어 남는 건 친구밖에 없어! 아침에 양치하다가 문득 든 생각이다.

최일중
최일중

젊었을 때 친구는 마치 공기같은 존재였다. 항상 몰려다니며 일상을 같이했다. 청춘의 친구는 나를 무장해제시킬 만큼 강한 구심력으로 서로를 끌어당기는 그런 존재였다.

지금은 그런 친구가 있기나 한 지 매우 의심스럽다.

친구라고 하면 젊었을 적의 친구의 이미지만 머릿속에 남아 있어서 그런지 지금껏 일 때문에 만나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 뭉뚱거려 지인이라고 불렀다.

언제부터인가 친구같은 지인이 하나둘 생기고 있다. 젊은 시절의 친구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어제 그런 지인 중 한 명이 병원에 입원해서 병문안을 갔다. 한 시간 이상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질 무렵에 미안한 마음과 함께 봉투를 내밀었더니 지인 역시 미안해하며 받는다.

정말 스스럼없는 친구라면 이런 미안함 따윈 없을 것이다. 그냥 알고 지내는 지인보다는 정서적으로 가깝지만 그렇다고 공기같은 친구는 아닌 어중간한 관계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문안을 갔다온 뒤로 일종의 충만감이 한동안 마음 한구석을 차지했다.

친구라는 말을 잊고 산 지가 오래 되었다. 알고 보면 햇살은 항상 변함없이 비추지 않는다.

하루 중에는 밤도 있고 어스름한 새벽, 땅거미 내린 저녁도 있다. 흐린 날도 있고 비나 눈이 오는 날도 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미세먼지가 심해서, 너무 더워서 아니면 너무 추워서 실내에만 있는 날도 부지기수다.

이런저런 시간들을 빼고 나면 햇살을 즐길 수 있는 순간은 의외로 적다. 나이들어 보는 친구들은 나의 삶을 더욱더 행복하게 해주는 햇살같은 존재다.

나이가 들어 친구의 존재를 의식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햇살이 그리운 혼자만의 삶이 그만큼 깊이 뿌리내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일본의 TV드라마 ‘심야식당’을 보면 에피소드가 중간을 넘어갈 무렵이면 으레 눈부신 도시의 밤거리를 배경삼아 굵고 낮은 남자의 나레이션이 흘러나온다.

하루가 끝나고 집으로 발걸음 재촉하는 사람들 하지만 어쩐지 아쉬운 마음에 옆길로 새고 싶은 날도 있다.

사회속에서 개인의 존재감이 커질수록 개인이 느끼는 허기 역시 커진다. 퇴근길에 어쩐지 아쉬워서 옆길로 새고 싶은 마음 이것은 각자가 나름의 방식으로 느끼는 개인적인 허기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개인화 역시 발전하듯 개인의 삶에서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개인화는 깊어진다.

퇴근길에 옆길로 새는 소소한 일탈이 사회적 차원의 허가를 채운다면 나이들어 만나는 친구는 한 개인의 삶에 드리운 무의식적인 허기와 쓸쓸함을 채워준다.

겉으로 보기에 인생은 각자 혼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이 육신이 곧 ‘나’라는 느낌은 어쩌면 이런 물리적 속성의 자연스런 반영일 수 있다.

그러나 한 사회를 놓고 보더라도 그리고 개인의 삶을 놓고 보더라도 인간은 결코 개인으로 자립하여 꿋꿋하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퇴근길에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나이들어 가끔 보는 친구가 반가운 것도 결국은 같은 이유다. 비록 육신은 개인으로 흩어져 있으나 영혼은 그렇지 않다.

영혼의 세계에서는 육신의 구별 같은 건 무의미하다. 어쩌면 육신이 그러하듯 영혼도 낱낱이 흩어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로 하여금 정서적 허기와 쓸쓸함에 빠지게 하는 지도 모른다.

신영복 선생은 숱하게 많은 출소자들은 감옥밖으로 떠나 보내며 빈약한 동거의 어느 어중간한 중도막에서 바깥 사람이라면 별리의 정한이 자리했을 빈터에 나는 그에게 무엇이었던가? 우리는 서로 어떠한 관계를 뜨개질해왔던가 하는 담담한 자성의 물음을 간추리게 된다고 하였다.

친구라고 부르는 순간 친구라는 그 이름에 얽매여서 더 이상 친구가 아니게 된다. 아침에 양치를 하다가 거울 속의 한 사람을 발견하며 불쑥 선생의 글을 떠올린다.

선생처럼 항상 담담하게 스스로를 성찰하는 마음이 친구를 더욱 빛나게 한다. 좋은 친구는 나 자신을 성찰하게 하고 자기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아서 나 역시 좋은 친구가 된다.

경험론의 창시자 베이컨은 이런 말을 했다. 친구가 없는 사람은 인생을 하직하는 게 좋다. 너무 극단적인 말이긴 해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친구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남자든 여자든 진정한 친구를 갖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일 것 같다.

세상에는 많은 친구를 갖고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재물이나 학식이 높다고 자랑하는 사람들보다도 말이다.

서양속담에 백 명의 친구는 모자라도 한 명의 원수는 벅차다란 말이 있다. 친구란 어떤 친구도 좋은 것이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친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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