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자식의 마지막 도리(道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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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자식의 마지막 도리(道理)
  • 장강뉴스
  • 승인 2020.06.0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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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논설위원)

자식으로서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몇 해 전 대전의 어느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자녀들이 모친의 시신을 남겨두고 종적을 감춘 일이 보도되었다.

최일중
최일중

삼 남매가 장례 기간 동안 빈소를 지키며 문상객을 맞았으나 발인일이 되자 장례비도 계산하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는 것이다.

병원측에서는 시신을 냉동상태로 안치실에 두고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려 왔지만 5개월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어서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부모의 시신을 내팽개쳐 두고 나 몰라라 하다니 아무리 도의가 땅에 떨어진 세상이라 하지만 너무하다 싶다.

오늘날의 우리의 효의식이 예전보다 희박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자기를 낳고 길러준 부모님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치르는 것은 자녀가 해야 할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장례식이야말로 자녀가 효성을 바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그래서 살아생전에는 다소 부모님께 소홀했던 자식들도 저승길이나마 마음 편히 가시라고 장례식에서는 정성을 다한다.

간혹 어떤 이유로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자식들도 부음을 듣고는 천리길도 멀다 않고 달려와 영전에 무릎을 끓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 아닌가.

요즘 한류 바람으로 한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드라마를 즐겨 보는 까닭을 이렇게 말했다.

“한국 배우들은 다들 얼굴이 예쁘고 연기를 잘 하잖아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집안을 잘 꾸며 놓고 살기 때문에 구경하는 게 재미있어요. 또 어른을 공경하는 풍습을 볼 수가 있어서 좋아요.”
그때 내 귀에 번쩍 뜨이는 말이 바로 마지막 부분이었다. 한국인의 어른 공경 풍습을 그들이 특별하게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당연하게 생각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이지만 그네들에게는 새롭게 비쳤던 모양이다.

중국은 과거 마오쩌뚱 시절에 문화대혁명을 한답시고 공자를 비판하고 유교이념을 부정했는데 그로인해 어른 공경의식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중국 젊은이들은 어른 앞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버스 안에서도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의예지(仁義禮智)를 표방하는 유교의 본산지이면서도 장유유서의 전통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가 중국을 닮아가고 있는 것일까.

경로의식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지하철 막말녀가 생겨나고 자식이 돈 때문에 부모를 살해하는 엽기적인 사건을 보면 우리라고 큰 소리를 칠 처지는 아니라고 본다.

가족은 혈연관계의 최소단위이자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혈연관계가 온전하지 않으면 가정이 바로 설 수 없고 가정이 바로 서지 않으면 사회관계도 원만하게 유지될 수 없다.

부모자식간이나 형제간의 관계는 물이 흐르듯 한 점 막힘과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그러기에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자녀에 대한 사랑과 부모에 대한 공경 형제간의 우애와 화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평소 내가 가장 꼴불견으로 여기는 것이 유산을 두고 형제간에 다투는 일이다. 부모님이 남긴 재산을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삿대질을 하다가 막판에는 소송까지 벌인다.

같은 혈육끼리 재판정에 서서 아웅다웅 하는 꼴을 돌아가신 부모가 본다면 어떤 심정일까. 그렇게 해서 재산을 조금 차지하면 마음이 편할까.

그로 인해 쪽박처럼 깨어져 버린 형제간의 우애는 어떻게 회복한다는 말인가. 부모가 가장 기쁠 때가 언제인가.

바로 자녀들이 다투지 않고 오순도순 사이좋게 지낼 때이다. 아무리 돌아가신 뒤라지만 돈 문제로 형제간에 티격태격 하는 것은 부모님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오히려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부모님의 임종 앞에서는 묵은 감정을 훌훌 털어버리고 웃으면서 두 손을 마주 잡아야 한다.

동기간에 서로 밝게 웃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저승으로 떠나는 부모님의 발걸음이 가볍지 않겠는가. 그것이 자식이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아닌가 싶다.

부모의 시신을 장례식장에 버려둔 채 부의금만 챙겨 들고 도망쳐버린 불효자는 반드시 찾아내서 중벌을 내려야 한다.

죽음은 슬프다.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죽음이란 어디에도 없다. 한 개인의 죽음은 그 개인과 가족의 사적인 사건일 뿐만아니라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우리의 공유된 운명을 환기 시켜 주는 공적인 사건이다.

그래서 개인의 죽음앞에서 우리는 하나가 된다. 죽음은 갈등과 충돌의 일시정지를 가져온다.

죽음앞에서 의견과 이해의 차이는 사소해진다.

망자에 대한 예의 때문만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우리가 모두 직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의금을 챙겨 들고 도망쳐 버린 불효자는 앞으로 얼마나 부자가 될는지... 자기가 죽으면 자기 자식들이 보고 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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