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주인공29 - 강진 도암면 대성이발관 김재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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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주인공29 - 강진 도암면 대성이발관 김재일 대표
  • 김채종 기자
  • 승인 2020.04.2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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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 “1995년 우연히 봉사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 계기
“간경화 3기 생사기로에서 간이식수술 받아, 이후 봉사활동 더욱 매진”

사랑의 가위손 김재일 대표 ‘요양원·교도소·독거노인 등 직접 방문 이발봉사’

김재일 대표
김재일 대표

이발소를 운영하며 25년간 자신의 기술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는 사람이 있다.

강진 도암면소재지에서 대성이발관을 운영하고 있는 김재일(60)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 다니며 머리를 손질해주며 사랑을 전해 오고 있는 김 대표는 지금도 해남유치장과 도암노인복지회관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펼쳐오고 있으며 이외에도 취약계층 어르신이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집을 직접 방문해 이발봉사를 해오고 있다. 휴일이면 어김없이 병원이나 요양원에 찾아가 해오고 있는 일이다.

김재일 대표 요양원 이발봉사
김재일 대표 요양원 이발봉사

김 대표가 처음 봉사활동을 하게 된 것은 1995년도 어느 날. 지역의 모 단체에서 독거노인돕기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봉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고.

꾸준하게 이웃에게 사랑을 전해오고 있는 김 대표는 힘든 막노동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꾸려나가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다 보니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에 제대로 학교를 다닐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6학년을 마쳐갈 무렵 인생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김 대표는 아버지에게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보내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아버지는 “중학교까지만 나오면 되제, 무슨 고등학교까지 가!”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듣고 김 대표는 “그라믄 중학교고 뭐고 기술 배워서 돈벌라요~!”하고 도암면소재지에 있는 이발소를 찾아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때 나이가 13살이었다.

당시 도암면소재지에는 이발소가 4~5군데 있었다. 김 대표가 선택한 이발소에는 기술을 배우는 남자들이 4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김재일 대표 이발봉사
김재일 대표 이발봉사

이발기술을 배우러 갔지만 처음부터 이발 기술에 대해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먼저 청소하고 빨래부터 시작했다. 그 후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 손님 머리 감기기, 면도기 갈기와 면도 배우기, 마지막으로 머리깎기 등 수 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배움이라는 것이 이발사가 상세히 학원처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닌 이발사가 하는 것을 보고 눈썰미로 배우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어느 해 겨울에 손님 머리를 감기는데 뜨거운 물을 확인도 않고 손님 머리에 붓는 바람에 그 손님에게 주먹으로 맞기도 하고, 면도하다가 손님 한쪽 눈썹을 많이 밀어버려서 혼나기도 했다”며 “지금은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어린 나이에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회상했다.

이때 수백, 수 천 번 때려치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5~6년 동안 기술을 모두 배울 때까지 참고 견디었다고 한다.

김재일 대표 가족
김재일 대표 가족

그러던 중 20대 초반에 젊은 혈기에 고향을 떠나게 되었고 방황하며 순탄치 않는 20대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사회현장에 뛰어들다 보니 당시 시골 정서가 매일같이 술먹는 문화라서 술도 일찍 배우게 됐다. 고향을 떠난 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1990년에 우연처럼 다가선 현재 부인 서정순씨를 만나 운명이 바뀌게 된다.

서정순씨와 새 삶을 살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왔다. 때마침 자신이 기술을 익혀놨던 이발관을 판다는 얘기를 듣고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산 이발관 생활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김 대표는 “한참 방황할 때 지금의 반려자를 만나서 인생이 참 행복했고 예쁜 딸을 낳아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되니 부인에게 표현은 안 했지만 늘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고 말한다.

김재일 대표
김재일 대표

아내인 서정순 여사는 남편을 도와 이발관 청소며 잔심부름 등을 하다가 14년 전부터 틈틈이 요양보호사 일도 하고 있다.

서 여사는 고향에서 수십 년간 사람 몸 중에서 가장 예민하고 중요한 머리 손질을 해오다 보니 고향 어르신들의 속사정까지 알게 되고 함께 수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던 것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고 말했다.

대성이발관
대성이발관

이발관을 운영하며 큰 돈은 벌지 못했지만 남을 위해 봉사하는데 큰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던 중 김 대표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2007년도 간경화 3기 판정을 받아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간이식 수술뿐이었다.

봉사를 열심히 해 온 김 대표의 선행이 하늘에 닿았을까? 광주 모 병원의 의사선생님 한 분이 이식을 주선해줬다. 간을 이식해 준 사람은 광주 소재 교회 전도사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새 삶을 되찾게 된 김 대표는 제2인생을 살게 해준 생명의 은인인 분에게 감사한 마음에 더욱 이발 봉사활동을 늘렸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원이나 요양원 등 움직임이 힘든 분들을 찾아 휴일 날이면 이발용품들을 챙겨서 찾아가고 있다.

대성이발관 김재일 대표는 “깔끔하게 머리손질을 받은 어르신들이 간혹 아무도 모르게 이발 가방에 5천원이나 만원을 넣어두는 경우가 있다”면서 “정이 많은 지역민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즐겁기만 하다. 특히 지병으로 말도 못하시는 분이 이발 후에 거울로 단정히 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손을 잡아 주거나 엄지척을 하였을 때나 자녀분들이 고맙다고 전화를 해주었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재일 대표는 이발관을 운영하면서 그동안 지역내 각종 사회 봉사단체에 회원으로서 성실히 임해왔다. 현재도 국제봉사단체인 라이온스클럽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도암면 의용소방대 대장의 소임을 맡아 지역의 참봉사인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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