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대 명절 ‘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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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대 명절 ‘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장강뉴스
  • 승인 2020.01.2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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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정월 초하루 卯토끼날, 2일 辰용날, 3일 巳뱀날, 4일 午말날, 5일 未양날, 6일 申원숭이날, 7일 酉닭날, 8일 戌개날, 9일 亥돼지날, 10일 子쥐날, 11일 丑소날, 12일 寅호랑이날 十二支 12일간을 지켜왔다.

최일중
최일중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이다. 이미 고향 가는 길을 재촉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이때만큼은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느끼던 평소의 짜증도 고향찾는 설렘에 스르르 사그라진다.

의미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설날을 세속의 시간에서 성스러운 시간으로 옮겨가는 교체기라고 한 말이 새삼 실감나는 때다.

지난 시절 생각해보면 예전 아이들은 새해가 되면 무조건 좋았던 것 같다. 우선 주머니가 두둑해지기 때문이었다. 신정이라 해서 양력 1월1일에는 집에서 새뱃돈을 받고 구정이라 불리는 설날에도 큰집에 모인 친척들로부터 새뱃돈을 두둑하게 챙길 수 있었으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좋았을까?

과거 이중과세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던 무렵에는 나이를 먹어서도 새뱃돈 챙기는 재미는 여전했지만 이전과 달리 새벽같이 큰집에 모여 차례를 보낸 뒤 서둘러 차례를 보낸 뒤 서둘러 떡국을 먹고 별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이 모두 직장으로 학교로 흩어졌다.

설날이 공휴일이 아니다 보니 직장에 나가고 학교에도 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중과세마저 용납하지 않은 정부가 설날을 없애려고 아예 공휴일에서 빼버렸던 것이다.

설날의 의미를 제대로 안 것은 머리에 먹물이 제법 들고 나서다. 일제가 분명 개화운동이란 미명하에 우리의 설날을 어떻게 없애려고 했는지, 신정, 구정이란 말이 왜 생겨났는지, 광복 후 그 악령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설날이 왜 복권되어야 하는지 등을 그때서야 알게 된 것이다. 우리 대부분이 겪었던 그때 그 시절의 얘기다.

설날이 가까워지니 인터넷에도 설날 관련 얘기가 많이 떠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얘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설날이 그 시대의 역법에서 첫날을 의미했던 것이니 지금의 역법인 양력에 따라 1월 1일을 설날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날을 역법채택의 문제로만 보아야 하는지 참으로 딱한 일이기는 한데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 것 같아 걱정도 많다.

지금 전 세계가 양력을 쓰고 있으니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양력을 쓰고는 있지만 양력에 비해 음력이 더 과학적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실상만큼은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한때 음력이 계절에 맞지 않는다 해서 양력이 더 과학적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전통역법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음력이란 정확히는 태음태양력이다.

양력이 해의 운동만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반면 태음태양력은 달과 해의 운동을 함께 나타낸 역법이다. 즉 달의 운동을 날짜로 나타내고 태양의 운동은 24절기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24절기가 음력의 양력 성분인 것이다. 그러니 날짜로 계절을 맞추려 하면 틀릴 수 밖에 없는데 이를 오해해서 한때 양력이 더 과학적이라 했던 것이다.

설날이란 한 해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는 해나 달이 어떤 시작점에 있을 때를 기준으로 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양력의 1월1일은 아무 의미가 없고 어떤 자연현상을 기준으로 한 새해의 시작도 아니다. 반면 설날은 달이 새로 생겨나는 그런 날이다. 새로 시작되는 자연현상에 비추어 우리의 생활도 새롭게 해보자는 뜻이다.

어찌 되었건 설날이 되었으니 지난해의 묵은 때를 털고 정말 새롭게 한 해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옛 속담에 새해 초하룻날 달력을 본다(大年初一看歷書)는 말이 있다. 날짜가 많이 남았다는 뜻이다. 멀리 보고 신속함과 조급함을 구분할 줄 아는 그런 지혜를 갖췄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경이라는 문헌에는 오래 살고(壽) 부유하고(富), 건강하고 마음 편안하며(康寧), 덕스럽고(攸好德), 깨끗하게 죽는 것(考終命)을 오복(五福)으로 적고 있다.

그리고 보니 어릴 때는 요즈음에 비해 복과 관련된 말을 일상속에서 훨씬 더 자주 들었던 기억이다. 복스럽게 생겼다. 밥을 복스럽게 먹어야 한다, 다리를 떨면 복이 나간다, 웃으면 복이 온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등.

이제는 시대가 변해 금수저니 흙수저니 쓰는 단어는 달라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복프레임 안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무엇을 가져야, 어떤 상태가 되어야 복을 받았다고 여길까? 복 많은 사람은 어떤 느낌일까? 매년 새해 인사로 복을 기원하면 복된 삶에 다가갈 수 있을까?

쉬운 대로 오복을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오래사는 장수의 복은 이제 100세 시대가 도래했으니 적지않은 사람에게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질병으로 심한 고통을 견뎌야 하거나 경제적으로 몹시 힘든 상태라면 오래 살아도 복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스스로 복을 짓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서로를 응원해보자.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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