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한 해를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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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한 해를 보내면서
  • 장강뉴스
  • 승인 2019.12.3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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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성균관 전의)

기해(己亥)년이 자리를 비우려 한다. 새로운 기운으로 다가오는 경자(庚子)년에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서 이지요. 뭐가 그리 바쁜지 세월은 어김없이 올해도 갈 길을 서둘러 돼지의 해는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최일중
최일중

세월은 흘러서 역사를 창조하고 하천 물은 흘러가도 자갈모래는 남아있고 인걸은 가도 사적은 남아있다. 역사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 의하여 발전되어 왔으며 국가를 형성한 민족에게는 역사가 있으며 그의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가는 해를 막을 자는 항우장사도 막지 못하는 세월, 세밑에 이르면 누구나 회한(悔恨)을 가슴에 담는다.

지는 해를 바라보는 내 삶의 뒷녁에 사라지지 않는 긴 가닥처럼 아쉬움이 그림자를 드리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거듭 흐르지도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내가 살아온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밖에 없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인데 어쩌면 영원한 기록일 터인데 회한의 순수나 그 지극함으로도 이미 산 세월을 되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세월은 온통 잿빛이다. 하기야 회한으로 한 해를 마감하는 그러한 어리석은 태도를 버리면 문제는 간단하다.

좋았던 일, 새삼 긍지가 솟는 일들이 되돌아보면 없지는 않다. 사실 그렇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살아온 삶의 흠을 드러내는 일은 지혜롭지 않다고 여긴다.

그래서 잘한 일, 자랑스러웠던 일을 찾아 그것을 한껏 크고 화려하게 꾸민다. 그것들을 가지고 부지런히 자기를 정당화 한다. 자기합리화를 위해 산뜻한 논리를 구사하고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낯선 의미들로 자기를 치장하기도 한다.

그러한 경우 우리는 스스로 지나온 세월을 감사하고 감격하기 조차 한다. 마땅히 세밑은 이러해야 한다. 우울한 그림자로 이 시절을 채색할 필요는 전혀 없다.

무엇보다 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삶이 건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적극적으로 사는 일,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 편이 회한으로 한 해를 마감하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보다 훨씬 생산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적극성이나 긍정성으로 보상할 수 없는 기만을 담을 수 있다. 자기도 남도 속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기만의 결과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남을 속인 것이든, 자기를 속인 것이든 자기 파멸에 이른다.

그러나 회한이 아무리 거추장스럽다 할지라도 세밑을 이렇게만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면 세밑에 이르러 밀물처럼 밀려드는 회한을 떨쳐버리는 길, 그것을 넘어서는 길은 하나밖에 없을 듯하다.

아예 세월을 끊어버리는 일이 그것이다. 어처구니없는 말이지만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 이제까지 살아온 세월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새해 새날을 맞는 일, 좋았던 일도, 한스럽던 일도 지난 세월에 담아 흘려보내고 새날 새아침에는 갓 태어난 아기처럼 그렇게 새 시간과 새 누리로 새해를 맞는 일, 새해가 그렇게 되도록 세밑의 회한을 넘어서는 일만이 이 시절을 사는 지혜로운 자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지난 좋았던 일이나 지난 부끄럽고 한스럽던 일들로 새해가 펼치는 새 가능성을 미리 얼룩지게 하는 것은 새해를 맞는 예의가 아닐 듯하다. 물론 이런 생각은 다만 꿈이다. 그것은 현실이 아니다. 우리가 역사를 벗어날 수도 없거니와 시간이란 단절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새해는 이미 단절을 전제한 처음이다. 그러므로 새해는 그것이 이어진 시간의 마디라 할지라도 새 창조를 위한  분명한 계기이다. 따라서 새해는 연속이 아니다. 그것은 단절을 획(劃)하고 비롯한 처음이다.

그렇다면 세월을 끊어 되 시작 한다는 것은 꿈이 아니다. 오히려 세밑을 지내며 새해를 맞는 시절이 갖는 뚜렷한 현실이다. 가장 순수한 회한과 감격마저 낡은 해에 실어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 세밑의 윤리인 것이다. 세밑을 이렇게 보내고 싶다. 새해를 이렇게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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