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되돌아보는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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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되돌아보는 크리스마스
  • 장강뉴스
  • 승인 2019.12.2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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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성균관 전의)

동짓달 밤이 긴 것은 자연현상이지만 마음의 조화이기도 하다. 임 생각이 간절하면 그럴 밖에. 동짓날 이야기는 아니지만 민요 육자배기의 사설 중에 이를 실토하는 것이 있다.

추야장 밤도 길더라. / 남도 이리 밤이 긴가 / 밤이야 길까 만은  / 님이 없는 탓이로구나. / 언제나 알뜰한 님을 만나서  / 긴 밤 짜루워 볼거나.

최일중
최일중

22일은 동지(冬至)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겨울 추위에 짝이 없어 옆구리 시린 이들에게 오늘밤은 더욱 길 것이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질 테니 한숨만 쉴 게 아니라 긴 밤이 언제 가는지 잊게 해줄 알뜰한 님을 찾아볼 일이다. 청승은 늘어가고 팔자는 오그라진다고 홀로 동지팥죽 먹는 신세한탄에 청승 떨어봤자 팔자만 오그라질 뿐이다.

동짓날은 사실 새 날의 시작이다. 옛 사람들은 이 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해 축제를 벌리고 태양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고대 중국의 주나라에서 동지를 설로 삼은 것이나 우리 조상들이 이날을 작은설로 부르며 기쁘게 맞은 것도 생명과 빛이 돌아와 새로 열리는 시간의 기점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도 거기서 나왔다.

동짓달 하얗게 식은 보름달이 파란 하늘에 딱딱하게 굳어있다. 달력을 말아들고 종종걸음 하는 행인의 뒷모습이 을씨년스럽다.

나이 들수록 봄은 느려지고 시간은 빨리 간다는 말이 허튼 소리가 아닌가 보다. 뒤로 돌아보지 않고 지나가는 시간의 무심함에 놀라며 올 한 해도 이렇게 가고 마는가 초조하고 착잡한 마음에 시린 생각들만 발걸음을 바쁘게 한다.

25일은 크리스마스 날이다. 믿든 안믿든 한 해 끝을 어떤 종교적 거룩함 속에서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따뜻한 웃음 찾아 입듯 따뜻한 기억을 꺼낸다. 산타클로스의 수염처럼 풍성했던 젊은 날의 크리스마스는 로맨틱했다.

가는 해와 오는 해의 옷깃 스치는 소리 펄럭이며 내리는 눈발은 솜털처럼 가볍고 따스하여 세상의 고뇌가 눈보라 뒤로 숨었다. 앙상하게 바람 앞에 서있던 가로수들도 꽃전등 달고 제몸에 하얗게 눈의 옷을 뒤집어쓰고 반짝이며 얼어붙은 겨울밤을 이겨내고 있었다. 의례히 크리스마스때는 눈이 오고 또 올 것으로 기대했다.

구세군의 종소리는 여전하지만 거리에 넘쳐나던 캐럴도 그 많던 눈도 다 어디로 간 걸까? 산타를 만나러 백화점에 간다. 어쩌면 우리는 신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산타를 기다리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타는 하늘에 있는 신보다 더 친근하고 더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는 어김없이 일년 단위의 기다림을 선물한다.

그러므로 산타는 그리워하기 위해 존재한다. 크리스마트 트리는 어두운 밤을 가로질러 찾아올 산타를 기다리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위해 반짝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차이콥스키 사계 중 12월의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트 날 밤에 처녀들이 추는 왈츠의 정경을 묘사하고 있는 경쾌하고 따뜻한 느낌의 피아노곡으로 나에게도 그런 크리스마스가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듣고 듣는다.

사계하면 우리는 비발디를 떠올리지만 같은 제목으로 그보다 매력적인 차이콥스키의 피아노곡이 있다는 사실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차이콥스키 대부분의 음악은 격정적인 면이 강하지만 그의 피아노곡들은 뜻밖에 연필로 그려진 그림처럼 담백하고 간결하다.

피아노 모음곡 사계는 러시아의 1년 열 두 달이 가진 분위기를 러시아 유명시인들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서 정적이고 감미로운 선율들이 전곡을 감싸고 있다. 눈내리는 겨울밤 따뜻한 난롯가에서 정겨운 사람들과 와인잔을 나누며 그런 편안함을 이런 멋진 곡에 담았으리라 상상해본다. 크리스마스란 그런 것이다.

눈이라도 내린다면 나도 거리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렇게 인사하고 싶어진다. 하늘엔 영광 땅위엔 평화! 비단 종교적인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 것으니...

우리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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