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손해(損害)를 보는 듯 사는 사람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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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손해(損害)를 보는 듯 사는 사람의 삶
  • 장강뉴스
  • 승인 2019.04.2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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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성균관 전의)
▲ 최일중

우리는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도 일년후의 미래는 어느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자신의 삶의 일들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것은 그만큼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주변상황이 변수이기 때문이다.

물론 치밀한 마스터플랜과 프로세스를 동원해서 미래의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도 있다. 목표 달성에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강한의지는 구체적인 결과를 낳고 인간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준다.

변화가 빠르게 진행된 것처럼 지금 우리사회는 사회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가치관의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우리사회가 먹고살기에 바빴던 과거의 생활습관이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여 이제는 좀더 건강하고 질적으로 나온 삶을 갈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러한 변화된 사회를 살아가야 한다.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조직화된 집단이나 세계로서 말이다.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문명의 발달로 우리는 편리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 인터넷 또한 보이지 않는 가상의 공간이라고 해도 역시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이용하는 예전엔 가져보지 못한 새로운 공간이다,

문제는 그러한 변화 속에서 남을 배려하고 바라보아주는 아름다움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각박하고 남의 생명까지도 우습게 여기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사회 공동체가 가져야할 목적은 아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참여한 인간이 자발적이고 헌신적으로 사회교류에 투신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각자가 차지하고 있는 지위와 맡은 일에 따라 공동선을 증진하는데 참여해야 한다. 이 의무는 인격의 존엄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된다면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작은 마음을 전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손해를 보는 듯 사람이라는 자기철학을 가진 사람이 있다. 국긴건강보험공단 강진완도지사 장승지 지사장이다.

장승지 지사장은 강진과 인연이 깊다. 고향은 이웃 해남이자만 2년을 넘게 강진완도지사에 근무하며 국민건강을 위해서 건강백세운동교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빛을 지고사는 인간보다 베푸는 인간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받는 것보다 먼저 주는 것이 복이된다.

지역에 대한 애착이 참 많다. 강진의 차(茶)에 대한 관심이 많고 ‘노인복지’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한달에 9천원 정도의 보험료도 내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의료혜택을 받을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한 일들은 지자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쉽지가 않는 일이다. 조례문제, 지원문제 등의 관련 일들이 서로 겹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려운 저소득 주민을 위해서는 질적 삶을 향상 시키기위해 열성적으로 추진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취미로 발효차에 대한 관심도 많아서 그런 공부도 하고 있다.

장승지 지사장은 사회에서도 직원들에게도 일상 강조했던 부분은 “손해를 보는 듯 사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손해를 보는 듯이 사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느끼는 감정이 남들보다 더 평온하고 너그러움이 존재하고 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남이 더 좋은 일이 생기고 삶이 행복해 진다면 그것은 보이지 않는 보시와 같은 것이다. ‘내가 조금은 손해를 보더라도’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회에 많은 구성원으로서 존재하고 그 일을 실천한다면 그러한 좋은 일들로 인해서 우리사회가 밝고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산다면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사회현상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그 속에는 배려와 격려와 사랑이 숨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손해를 보았다고 느끼며 사는 사람은 지금도 불행하고 앞으로도 불행하게 살아 갈 사람이다. 왜냐하면 항상 손해를 보았다고 하는 의식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그 손해를 보상받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과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자기중심으로 살기 때문이다. 그런 사고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뇌의 생명체는 밝고 맑은 구조가 될 수 없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지 부와 명예와 자기 이익만을 가지고는 살수가 없다.

고대사회이거나 현대사회나 나누는 문화가 필요한 사회다. 또 그렇게 사회가 변천해왔다. 지금의 사회는 특히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삶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을 바라보아 주는 사람이 많이 요구되는 사회다.

나의 주변에서 손해를 보는 듯이 사는 넉넉함이 있는 사람은 참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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