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행복(幸福)한 가정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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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행복(幸福)한 가정 만들기
  • 장강뉴스
  • 승인 2019.02.2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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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장흥군보건소 통합의료산업팀장)
▲ 김금

종단을 막론하고 성직자들이 연단에 서서 첫마디로 열어가는 말 중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여러분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일 것이다.

나 역시 나 스스로에게 또 교도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지금 행복 하느냐’는 질문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행복하다고 답을 하는 사람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뉴스에서는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갈수록 내려간다고 하고 우리 국민이 30%가 우울증 증세가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의 원인이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가족의 친밀도와 신뢰도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 가정에서의 행복이 삶의 행복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두 가지 마음가짐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효심이다. 부모의 마음을 알고 보은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 자녀로서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다. 나를 낳아 주고 양육하시고 가르쳐 주신 은혜는 절대적인 은혜이다. 그래서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을 의무라 하지 않고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도리라고 한다.

예부터 충신은 효자문에서 구한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 세월이 지난 지금에 또 그 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철이 들기 전에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조르고 보채면 그 욕구를 채울 수 있었다. 왜냐면 부모의 헌신적인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철이 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동안 나의 욕구가 채워진 것이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의 결과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뜻이다. 철든 사람의 효의 마음으로 임금을 섬기면 이것이 곧 충이다. 이는 효의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서 남을 업신여기지 않으며 윗자리라 하여 교만하지 않고 아랫자리라 하여 어지럽히지 않고 다투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부모님에게 언제나 불효자이다. 그 만큼 부모님의 은혜는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믿는 대상(절대자)에 무릎 꿇고 기도하듯 부모님에게 항상 공경의 마음으로 성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효도는 교육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부모님께 효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자식이 훈습으로 효를 익힌다. 부모님과의 유대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행복이야 말로 이 세상 어느 행복보다 더 큰 행복이 된다.

둘째는 좋은 가풍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20여 년 전 만 해도 집안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가훈을 적은 액자를 걸어놓았다. 가훈의 실천으로 좋은 가풍을 이루자는 의미다. 좋은 가풍은 가족 구성원들의 좋은 풍습을 익혀 나갈 때 이루어진다.

악습을 가지고 있으면 분란을 일으킨다. 과거에는 조그만 실수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한순간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는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 운전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물질의 소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조화가 필요하다. 우리 자손들에게 어떠한 마음의 자세를 갖게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가치관이고 가풍이 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새벽에 청수를 떠서 나를 위해 기도해 주던 어머님의 모습이 있어 큰 과오 없이 지금까지 인생길을 걸어오지 않았나 싶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 가정이 어떤 가풍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또한 행복한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분수령이 된다. 부모님과 연락을 끊고 살면서 ‘나는 행복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근본과 뿌리를 찾아가려는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살펴보라. 가정 안에서 웃음꽃이 피는 것보다 더한 큰 기쁨은 없다. 선조들의 교과서인 명심보감에도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어느덧 무술년을 보내고 기해년을 맞고 있다. 세월은 부모님을 기다려 주질 않는다. 가는 세월은 누구도 붙잡지 못한다.

소크라테스는 부모를 섬길 줄 모르는 사람과는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첫걸음을 벗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효란 인간의 첫걸음이다.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만나는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터득하는 사회성이다.

본능적인 인간은 부모에게 효를 다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사회가 변하면서 그 설계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거기에 부모들도 설계를 변경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경쟁에서 이기는 설계를 강화하면서 효에 대한 부문을 소홀이 한 것이다.

후천적인 설계 변경에 적응한 우리 아이들은 점차 본능적인 효의 감각을 잃고 초현실주의 개인이 되어 살아가게 되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경하는 것에서 특별히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효라 일컬어 왔는데 이제 그 효 사상에 금이 가고 있다.

생존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효는 저 멀리 내던져진 것이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생각에는 효가 자리하고 있다. 효란 부모를 향한 배려와 염려의 마음으로 섬기는 행동이다. 여기서부터 인간다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다움이 시작이 꼬였다면 이미 인성은 꼬인 것이다. 그런 사람은 핵심이 빠진 껍데기에 불과하다.

효가 없다면 인간관계의 시작이 잘못된 것이고 학교나 사회생활에서의 결과도 불 보듯 뻔하다고 할 수 있다.

논어학이편에 제자입즉효(弟子入則孝)젊은이들은 집에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출즉제(出則弟)밖에서는 사람들에게 공손하라. 근이신(謹而信 )그리고 언행을 삼가고 신중히 하라.

범애중(汎愛衆)모든 사람을 널리 사랑하고 이친인(而親人)인품이 좋은 사람과는 가까이 하라.

행유여력즉이학문(行有餘力則以學文)이 일들을 다 행하고 여력이 있을 때 비로소 글을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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