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任重道遠(임중도원)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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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任重道遠(임중도원)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 장강뉴스
  • 승인 2019.01.2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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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성균관 전의)
▲ 최일중

참 일도 많고 탈도 많은 한 해였다. 우리에게 어느 해인들 다사다난 하지 않았던 적 있었냐만 교수들도 논어 태백편에서 찾은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의 임중도원(任重道遠)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게 하자던 그 약속은 아직 지켜지지 않았다. 소득주도 혁신 성장, 공정경제라는 경제기조의 주춧돌조차 바로 놓지

못한 상태에서 적폐청산에 대한 저항 또한 만만치 않다. 갈 길은 먼데 짐이 너무 무거워서인가. 은근슬쩍 길가로 짐짝을 하나둘씩 내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시민들이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단박에 이 모두를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떠난  길이 아니었다. 수많은 혁명으로 피 흘렀어도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세상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 세상은 누군가를 목

조르고 총칼로 윽박질러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그런 시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통일전쟁이라고 하든 해방전쟁이라고 하든 남이든 북이든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세상을 바라며 한국전쟁을 벌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반세기를 넘는 분단과 억압독재의 나날이었다. 올해는 그 오욕의 역사를 극복하는 것으로 문을 열었다. 새로운 시작을 열자는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은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의 염원뿐만 아니라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기다리는 인류의 염원까지 담았기에 세계의 눈과 귀가 쏠렸던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짊어진 짐이 무겁다 하여 쉽게 내려던져서는 안 된다. 논어에서도 증자가 말했다. “선비는 굳세고 단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임무는 무겁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을 자기의 임무로 삼고 있으니 어찌 무겁지 않겠는가. 죽어서야 마칠 것이니 또 멀지 아니한가.”

강하고 굳세고 질박하고 어눌한 사람이 인에 가깝다. 오직 그런 사람만이 능히 사람을 좋아 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다. 늘 겸손하고 끝없이 배우면서도 인(仁)을 임무로 삼은 자는 굳세고 단호해야 한다. 교수들이 임중도원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지만 제발 마음을 굳건히 다잡고 묵묵히 걸어가라고 하였다.

태백편에 이런 말이 이어진다. ‘나라에 도가 있을 적엔 가난하고 천한 것이 부끄러움이요. 나라에 도가 없을 적엔 넉넉하고 귀한 것이 부끄러움이니라.’ 독재와 불의로 길러진 나라에서는 부유하게 사는 것이 욕된 일이지만 이제 우리가 살아갈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에서는 가난이 처음으로 부끄러워질 것이다.

열심히 일한다고 무참한 죽음을 당하지 않고 지위가 높을수록 더 많은 책임과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세상이라면 그런 수고의 대가를 받는 것이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한 해의 막바지에는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이 되어 찾아온 날이 있다. 너무나 가난하고 비천하여 제 아들을 말구유에 눕힐 수밖에 없었던 마리아는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혼내셨습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라고 노래 불렀다.

우리는 해마다 그 노래를 다시 부르면서도 아직도 그날을 이루지는 못했다. 혹자는 성탄절이 기원전부터 있던 이집트의 태양신 숭배와 연관된다고 말한다. 점차 낮이 길어져 어둠이 물러나고 빛이 세력을 얻어 만물이 소생해 나갈 수 있는 동지(冬至)를 기념일로 삼았다는 것이다. 성탄을 보내고 새해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민주주이가 꽃피고 우리의 생활 곳곳에 누누이 쌓인 나쁜 기운들을 몰아낼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부터 어질지 만 굳세고 단호해야 한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죽어서야 벗을 수 있는 짐을 우리가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포기하지 말자. 우리 아이들이 부유하다 해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면 나를 돌아보고 나다운 삶을 살기로 한다. 우리 사회는 개인의 개성보다 공동체와의 조화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유교문화는 주어진 역할과 도리를 강조하며 국가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에 맞추는 것을 아름다운 삶으로 가르친다.

그러다보니 타인의 감정을 염려하느라 정작 자신을 돌볼 틈이 없고 상대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불안해 하면서 심지어 자신의 자격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는 때도 적지 않다. 나다운 삶을 산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방식과 철학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존중하면서 어떤 가치를 실현하며 무엇에 항복해 하려 하는지를 아는 삶이 나다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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