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내 삶의 중심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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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내 삶의 중심잡기
  • 장강뉴스
  • 승인 2018.11.1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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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장흥군보건소 건강증진팀장)
▲ 김금

두꺼비에 관한 우화가 있다. 밭에서 놀던 두꺼비 한 마리가 큰 황소를 봤다. 황소의 큰 몸집을 보고 첫눈에 반한 두꺼비는 작은 공만한 자기의 몸집을 살피며 황소를 엄청 부러워했다.

결국 두꺼비는 큰 몸집을 가져보겠다고 몸을 쭉 펴고 배를 부풀렸다. 그리고 옆에 있는 동생 두꺼비에게 물었다.“어때 이만하면 됐지. 내 몸도 황소만큼 커진 거지?” 동생은 대답했다. 또다시 몸을 부풀리며 물었다. 하지만 동생의 반응은 똑같았다. “전혀 아니야.” 포기할 줄 모르는 두꺼비는 몸을 최대한 부풀리며 재차 물었다. “이래도 아직이니?” 동생은 큰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어림도 없다니까. 자꾸 묻고 그래?” 두꺼비는 지나치게 몸을 부풀리다 그만 터져 죽고 말았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 작으니까 두꺼비이고 크니까 황소이다. 갖자의 위치에서 주제에 맞게 소신있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한평생 남의 인생만을 바라보는 허망한 삶이 된다.

사람은 비교심을 갖지 않고 살기 어렵다. 자식 키울 때 역시도 친구 자녀와 비교하지 않고 키우기 어렵다. 오죽했으면 엄친아(엄마친구의 아들의 줄임말)라는 단어가 일상어가 되었겠는가? 사람이 한 평생을 잘 살다 가려면 중심점을 잘 잡아야 한다. 드라마도 작가의 중심점이 흔들리면 막장이 되고 만다. 주제에 맞는 탄탄한 대본으로 극의 재미를 끌어가야 한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 있어 주인공이자 작가이다. 자기의 인생 드라마를 써 내려가는 작가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 삶의 중심잡기를 잘하고 있는가? 늘 대조하고 또 대조해야 한다.

인생이란 복잡하고 산만해서 갈피를 잡기가 힘들다. 각자 원하는 삶이 있다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자기의 정체성을 잡아 소신있게 살아가기가 어렵다. 이럴 때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게 된다. 될 대로 되겠지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도 있다. 그러므로 내 삶의 중심점을 잡고 온전하게 자신을 살피는 일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시인 이상은 그의 시 ‘거울’에서 거울에 반대로 나타나는 자기를 응시하면서 분열하는 두 자아의 화해를 추구했다. 시인 노천명도 사슴에서 자기의 외적인 모습으로부터 성격, 처신, 삶의 자세를 찾아내면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슬픔을 시로 썼다. 중국의 시인 이태백은 자기를 하늘에서 귀향온 신선이라 했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알바트로스에서 최고 권세에 의하여 시인이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당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러한 글은 자기의 참모습을 찾기 위한 하나의 표현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며 내 하루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점검해본다. 또 매순간 생각의 중심은 어디에 집중해 있는가? 나의 참모습을 알고 실현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나라는 다종교사회이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 저마다 신앙의 대상을 마음에 모시고 의지하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심지(心志)의 80%는 저마다 갖고 있는 종교의 사상에서 기인한 것이라 본다. 그러나 마음에 모신 신앙의 대상과 대화하며 자신을 바로 세워야 한다. 신앙의 대상은 내 삶의 중심잡기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 삶의 중심에 늘 그분이 계신 지 확인하고 되물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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