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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姓)씨 알아보기 – 2최일중(한국성씨본존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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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26  09: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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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檜山 甘氏(회산 감씨)

▲始祖 甘揆(시조 감규)

감씨는 원래 발해국 주왕(周王)의 셋째 아들 숙대(叔帶)를 감후(甘侯)에 봉한 후 지명을 따서 성(姓)을 삼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우리나라 감씨의 시원(始原)은 문헌상의 기록이 없어 잘 알 수 없다.

다만 <회산감씨대동보>에 의하면 원(元)나라 성종(成宗)때 한림학사이던 감규(甘揆)가 노국대장공주를 배행(陪行) 고려에 들어와 문하시랑평장사를 역임한 후 연릉군(延陵君)에 봉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6세손 감철(甘喆)이 문신(文臣) 종2품인 금자광록대부를 지내고 회산군에 봉해지면서 본관을 회산(檜山)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감씨는 회산 이외에도 합포, 충주, 거창, 창녕, 부령 등 6본이 문헌상으로 전해오고 있으나 충주, 거창, 창녕, 부령은 합포에서 분파된 것이고 회산이 대종(大宗)을 잇고 있다.

한편 회산 감씨와 그 연원을 같이하는 합포 감씨가 있다.

그 유래를 보면 득성시조와 선계(先系) 등이 조선씨족통보 등 문헌에서도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우리나라 희성씨 회산감씨의 후예로서 고려조에서 사복시정을 지내고 경남 마산의 옛 지명인 합포에서 세계(世系)의 기초를 다진 감성조(甘成朝)를 기세조로 삼고 있다.

관향은 세거 정착지인 합포로 삼아 계대(繼代)되고 있으며 1985년 인구센서스 결과 60여명이 서울과 경남 일원에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조에 이르러서는 성종조(成宗祖)에 문과급제 후 부사(府使) 군위현감을 지낸 감상중(甘尙中)이 문중의 후손으로 전해져오고 있을 뿐 달리 현달(玄達)한 선조는 나타나있지 않은 채 세거지(世居地)로 정해진 관향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나라 감씨(甘氏)의 대종(大宗)인 회산 감씨와 연원(淵源)을 같이 하는 동조동근(同祖同根)의 인맥상을 견지하여 함께 번거(繁居) 중인 우리나라의 성씨 가운데 유수한 벌족이다.

▲시조묘(始祖墓): 경남 창원시 내리동.

▲향사(享祀): 음력 4월 15일 사림제봉행(士林祭奉行)

▲제우(際宇): 화산제 삼열사 관술서당.

▲인구(人口): 서울 668, 경기 297, 강원 42, 충북 40, 충남 75, 대구 214, 부산 1230, 경북 196, 경남 2076, 전북 35, 전남 139, 제주 0 계 5,012.

⑤晋州 姜氏(진주 강씨)

▲始祖 姜以式(시조 강이식)

진주강씨의 시조는 강이식(姜以式)이다. 그는 고구려 병마도원수였으며 영양왕 9년 중국 수(隋)나라 문제(文帝)가 사신을 보내어 고구려로 하여금 복속할 것을 위협하자 이같은 무례한 글은 칼로써 답해야 한다고 주장, 영양왕의 출전명령으로 정병(精兵) 5만명을 이끌고 나가 임유관(臨渝關)에서 수나라 30만 대군을 격파하였으며 그 후 수나라 백만 대군이 재침(再侵)해 오자 다시 출정하여 요동성, 살수 등지에서 이를 대파하여 그의 위명을 크게 떨쳤다고 한다.

이는 일반 사서(史書)에는 그의 이름이 없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신채호(申采浩) 사실발굴(史實發掘)에 의하여 비로소 나타나게 된 것이다.

강이식(姜以式)을 시조(始祖)로 하고 진주(晋州)를 관향(貫鄕)으로 삼게 된 것은 신라말 강이식의 후손으로 태중대부판내의령(太中大夫判內議令)을 역임한 강진(姜縉)때부터이다.

그는 나라에 세운 공으로 진양후(晋陽侯)에 봉해졌는 바 그의 아버지는 강택인(姜擇仁)으로 진안후(晋安侯)에 봉해졌던 인물이다. 따라서 부자 2대에 걸쳐 봉작(封爵)을 받은 명문가이다.

구보별록계서도에 의하면 강진은 정순공(正順公)으로 숭인전사운과에 급제한 후 벼슬길에 오른 인물이며 그의 선대는 강택인(姜擇仁), 강극용(姜克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양(晋陽)은 오늘날 진주(晋州)의 옛날 이름이다. 강이식을 동일시조로 하여 강계용(姜啓庸)을 파조(派祖)로 하는 박사공파(博士公派), 강위용(姜渭庸)을 파조로 하는 소감공파(小監公派) 강원로(姜元老)를 파조로 하는 시중공파(侍中公派), 강민첨을 파조로 하는 은열공파, 강감찬을 파조로 하는 인헌공파 등 여러 지파로 계대하고 있으나 인헌공파를 제외한 4파는 관향을 진주로 인헌공파는 본관을 금천으로 하고 있다.

금천 이외에도 안동, 백천, 해미, 동복, 전주, 경주, 광주 등이 있으나 이는 모두 진주의 지파로서 진주강씨의 거주지명을 따서 관향으로 삼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의 문헌상 고증을 보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즉 조선조 초기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경주부에는 강씨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데 조선후기에 발행된 증보문헌비고에는 강씨가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분관(分貫)은 어느 시기에 이루어졌는지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박사공파의 파조인 강계용은 고려때 국자박사가 되어 왕명으로 통신사의 서장관이 되어 일본에 다녀온 후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리고 소감공파의 파조인 강위용의 손자 강충은 군기시사, 시중공파의 파조인 강원용의 손자인 강원로는 관서대장군을 역임하였으므로 이 파를 관서공파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은열공파의 파조인 강민첨은 고려 현종때 거란의 소배압이 이끄는 60만 대군을 맞아 강감찬과 함께 귀주에서 대첩한 해동명장으로 부원수를 지냈다.

인헌공파의 파조가 되는 강감찬의 선계는 강궁진이다. 강감찬의 자(字)는 은천 시호는 인헌(仁憲)이며 고려 성종때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예부사랑 국자감 제주 서경유수 내사시랑평장사를 역임하였으며 현종 9년 거린의 60만 대군이 침입할 때 서북면 행영도통사 상원수가 되어 흥화진에서 적을 대파하고 이어 회군하는 적을 귀주에서 괘멸시켜 그 공으로 문하시랑동내사문하평자사 천수현개국남으로 식읍 300호와 추중협모안국공인이 되었다.

조선조에 들어서도 상신 5명, 대제학 1명, 장군 25명, 명신 및 공신 51명을 배출하였다. 훈민정음 창제에 공을 세웠으며 ‘청천양화소록’을 남긴 명신 강희안과 세조때 이조판서 세자빈객을 거쳐 예종때는 익제공신 진산군에 봉해지고 성종때는 다시 좌리공신에 봉해진데 이어 세조실록 편찬 판돈령부사 좌찬성에 오른 아우 강희맹이 유명하며 선조때 석학으로 문명을 날린 강항은 정유재란때 포로로 일본에 건너가 그곳의 학자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친 원조로 유명한데 ‘간양록’을 위시하여 ‘수은집’ 등의 저서를 남겼다.

조선조 초기 당대의 대문장가로 손꼽는 강희안은 화가로도 유명한데 시·서·화의 3색으로 손꼽는다. 그의 ‘산수인물도’ 교두연수도와 ‘강지돈령석덕묘표’ 등의 글씨가 전해지고 있다.

그의 아우 강희맹 역시 문장가이자 화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조선조 정조때는 강세황이 시, 글, 그림으로 유명했다. 그의 서체는 왕의지, 왕현지 등의 서체를 본떴는데 신묘한 경지에 이르렀고 그림은 산수와 사군자에 뛰어나 ‘난죽도’, ‘묵죽도’ 등이 전하고 있다.

사계 김장생의 문인으로 예학에 정통한 강석기는 인조때 우의정에 오른 명신인데 그의 딸은 소현세자의 빈이 되었다. 그의 저술로는 ‘월당집’이 전한다. 구한말의 대시인으로 손꼽는 강위는 금석학 등 박학다식하며 외교가로도 활약했는데 저술로는 ‘동문자모분해’, ‘고환당집’ 등이 있으며 대문장가로 유명하며 ‘국포집’을 펴낸 강박 또한 진주강문을 빛냈다.

1919년 조선총독 사토에게 폭탄을 던진 의사 강우규선생을 위시하여 천도교 지하운동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했던 강인택, 의병활동을 주도한 강기동, 강원호 등이 조국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외에도 강흥열, 강진해, 강창제 등 수많은 민족지도자들이 배출되어 일제와 싸웠다.

▲향사(享祀): 始祖 元帥公 음력 3월 10일 / 仁憲公 음력 3월 9일 初丁日 / 殷烈公 음력10월 5일 / 御史公 음력 10월 10일 / 晉州府院君 음력 10월 10일.

▲인구 서울 203121명, 경기 123,988명, 강원 24,997명, 충북 23,895명, 충남 6,805명, 대구 34,785명, 경북 57,333명, 경남 122,066명, 부산 10,072명, 전북 58,329명, 전남 95,671명, 제주 28,773명 계 85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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