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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姓)씨 알아보기 - 성(姓)과 본(本)의 의의최일중(한국성씨보존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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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15  13:4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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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姓)의 의의

성은 사람이 출생한 혈족의 호칭 및 출생의 혈족개통을 표시하는 표지(標識)이다. 모계사회에서는 모계의 혈통을 표시하는 표지이고 부계사회에서는 부계의 혈통을 표시하는 표지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성(姓)은 원칙적으로 부계혈통을 표시하는 표지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부(父)가 외국인인 경우 父를 할 수 없는 경우 입부혼인(入父婚姻)의 경우에는 자녀가 모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도록 하여 우리나라의 성이 모계혈통을 표시하는 표지가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현행 가족법에서는 전기의 경우 외에 자녀의 성과 본을 부모가 혼인시에 합의하거나 아이의 복리를 위하여는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도록 개정하였으며 친양자(親養子)제 도입으로 혈통과 관계없이 의붓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도록 개정함으로써 성씨의 본관만으로 혈통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성과 본을 바꿀 수 없는 성불변(姓不變)의 원칙을 하나의 전통으로 고수하여 왔다. 성(姓)이 다른 남녀가 혼인하여 부부가 되더라도 종래의 성을 바꾸지 않고 각자의 고유의 성을 그대로 사용하여 왔다.

이것은 세계의 여러나라 중 우리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한 전통이다. 성을 바꾸는 것은 가문에 대한 치욕이요. 본인에 대한 모욕이었다. 일본 식민지 시대에 일본당국이 조선에 대한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강요한 것은 얼마나 우리나라 민족의 자존심과 정통성을 짓밟는 소행이었던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민법에서는 성의 변경이나 불변경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 없어서 문제이나 성의 변경을 인정하지 않는 관습법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부모를 알 수 없는 자가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어 성과 본을 창설하고 일가를 창립하였으나 그 후 부 또는 모를 알게 된 경우 자기의 현재의 성과 본을 변경하여 부 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하는 경우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의하여 고아원 등 보호시설에서 입양한 양자는 양친이 원하는 때 자기의 현재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도록 하는 경우에만 성의 변경을 인정하고 있다.

■본(本)의 의의

본은 본관(本貫) 관적(貫籍), 적관(籍貫) 족본(族本), 관향(貫鄕)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쓰이며 이를 약하여 본(本), 적(籍), 향(鄕)이라고 쓰이기도 하나 우리 민법에서는 본(本)이라고 했다.

본은 시조의 발상지명(發祥地名) 즉 시조의 정착세거지(定着世居地)의 이름을 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때로는 왕이 공신이나 귀화인에게 특별히 성과 함께 하사하는 경우도 있었고 봉군(封君, 고려시대 종1품, 조선시대 종2품 이상의 공로자에게 주는 작위)의 칭호에 따라 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은 고려를 건국한 후 개국공신인 홍술(弘述) 또는 홍술(洪術)에게 홍유(洪儒)로써 의성홍(義城洪)씨의 시조가 되게 하고 백옥삼(白玉衫)에게는 배현경(裵玄慶)로써 경주배(慶州裵)씨의 시조가 되게 하였으며 삼능산(三能山)에게는 신숭겸(申崇謙)으로서 평산신(平山申)씨의 시조가 되게 하고 복사귀(卜沙貴)에게는 복지겸(卜智謙)으로서 면천복(沔川卜)씨의 시조가 되게 하였다.

이중 특히 삼능산은 활을 잘 쏘았다. 어느 날 왕건은 여러 장수와 함께 평산(平山)으로 사냥을 나갔는데 한 곳에 이르러 하늘을 보니 기러기가 날고 있었다.

왕건이 장수들을 보고 “누가 저 기러기를 쏘아 맞힐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삼능산이 앞으로 나서며 자기가 쏘아 맞히겠다고 하였다. 삼능산은 “몇 번째 기러기를 쏠까요?”하며 아뢰자 왕건이 “세 번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를 쏘라”고 하였다.

삼능산은 활을 쏘았으니 왕건이 말한 대로 세 번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에 화살을 맞고 떨어졌다. 삼능산은 원래 곡성(谷城)사람이었는데 이를 보고 탄복한 왕건은 신(申)을 성(姓)으로, 평산(平山)을 본(本)으로 기러기가 날던 땅 3백결을 식읍으로 하사하였다. 그후 삼능산(三能山)은 신숭겸(申崇謙)이 되어 평산신(平山申)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제부터 봉군(封君)의 칭호를 본(本)으로 삼은 몇 성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광산김(光山金)씨의 시조는 신라의 왕자 김흥광(金興光)이다. 현존하는 기록으로 그가 신라의 왕자였다는 사실만 밝혀졌을 뿐 선대의 계보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그는 신라말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국가사직이 위태로움을 느끼고 경주(慶州)를 벗어나 무진주(武珍州) 서일동(西一洞, 지금의 담양군 평랑동)에 은거하여 자연을 벗삼으면서 살았다. 그 후 고려 태조 왕건이 그를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에 봉하니 후손들이 광산(光山)을 본(本)으로 삼았다.

또 의성김(義城金)씨의 시조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아들인 김석(金錫)이다. 그를 고려 태조 왕건이 외손자로서 의성군(義城君)에 봉했기 때문에 후손들이 의성(義城)을 본(本)으로 삼았다.

■본(本)과 성(姓)의 관계

우리나라 성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본 중심이라는 것이다. 본(本)은 성(姓)이 점차적으로 확대 일반화되면서 성만으로는 혈족계통을 완전히 표시할 수 없게 되자 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본을 성앞에 붙임으로써 혈족계통을 확실히 표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생긴 제도이다.

즉 성만으로는 혈족계통을 완전히 구분할 수 없는 것은 아무런 혈족관계가 없으면서도 동일한 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김(金)씨나 이(李)씨가 많은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본이라는 말이 처음 역사기록에 나타난 것은 신라 헌강왕(憲康王) 5년에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하동(河東) 쌍계사(雙溪寺)의 진감동사(眞鑑同師) 탑비문(塔碑文)에서다. 여기에는 관적(貫籍)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1985년 인구센서스에서는 우리나라 본(本)이 3347개로 조사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5대 대성의 중요한 본(本)은 김(金)씨의 경우 김해김(金海金)씨 등 84본, 이(李)씨는 88본, 박(朴)씨는 28본 최(崔)씨는 23본 정도이다.

권(權)씨도 5~6개 본이 있었다고 하나 확인되지 않으며 현재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안동권(安東權)씨와 예천권(醴泉權)씨의 2본이다.

그러면 한국의 성씨에 대하여 다음 호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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